[충북 영동] 신항리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제984호) 본문
종 목 | 보물 제984호 |
명 칭 | 영동 신항리 석조여래삼존입상(永同 新項里 石造如來三尊立像) |
분 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등록)일 | 1989.04.10 |
소 재 지 | 충북 영동군 용산면 신항리 135-1 |
시 대 | 통일신라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영동군 |
옛 석은사지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입상으로 현재 기와지붕만을 씌운 누각 안에 서 있다. 직사각형의 네모나고 평평한 돌에 새겨진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이 배치된 삼존불(三尊佛) 형식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작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둥근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두꺼운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형 모양의 띠매듭이 있다. 옷주름선은 오른손 아래에서 3가닥의 음각선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양쪽의 보살상은 각각 손으로 물건을 감싸 잡거나 합장한 자세이다.
반듯하면서도 단아한 어깨와 중후한 체구 등 신체 각 부분에서 옛 형식이 나타나는 이 삼존불상은 태안마애삼존불상 등과 함께 7세기 석불상을 계승한 것으로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의 작품으로 크게 주목된다.
반듯하면서도 단아한 어깨와 중후한 체구 등 신체 각 부분에서 옛 형식이 나타나는 이 삼존불상은 태안마애삼존불상 등과 함께 7세기 석불상을 계승한 것으로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의 작품으로 크게 주목된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신항리의 옛 석은사터(碩恩寺址)에 부조(浮彫)된 통일신라시대의 삼존석불입상(三尊石佛立像)으로, 현재 사방벽이 없는 기와지붕만을 씌운 누각건물 안에 서 있다. 본존(本尊)은 신고(身高) 200㎝, 머리높이 43㎝, 어깨넓이 59㎝이고 왼쪽보살은 신고(身高) 136㎝, 머리높이 31㎝, 어깨넓이 32㎝이며 오른쪽보살은 신고(身高) 148㎝, 머리높이 31㎝, 어깨넓이 32㎝이다.
장방형(長方形)의 네모난 판석(板石)에 부조된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을 중심으로 좌 ·우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이 배치된 삼존형식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상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계)가 작은 편이며, 미소를 머금은 둥근 얼굴은 원만(圓滿)하다. 두터운 통견(通肩)의 법의(法衣)가 가슴에서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형의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선은 그다지 유려하지 못하나 오른손 아래에서 3가닥의 음각선을 이루며 흘러 내리고 있다. 이 불상의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이고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으며 이중(二重)의 원형두광(圓形頭光)을 지니고 있는데 안에는 연화문(蓮華紋), 이 밖에는 확대된 연주문(蓮珠紋)이 이어져 있다. 전체적인 신체모습은 두꺼운 법의(法衣)로 인하여 그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보주형(寶珠形) 두광을 지니고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쓴 양쪽의 보살상은 각각 손으로 지물(持物)을 감싸 잡거나 합장한 자세이다. 반듯하면서도 단아한 어깨와 중후한 체구 등 신체 각 부분에서 고식(古式)이 나타나는 이 삼존불상은 태안마애삼존불상(泰安磨崖三尊佛像)과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 등 7세기 석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크게 주목되는 삼존불상이라고 하겠다. [문화재청]
장방형(長方形)의 네모난 판석(板石)에 부조된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을 중심으로 좌 ·우에 보살입상(菩薩立像)이 배치된 삼존형식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상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계)가 작은 편이며, 미소를 머금은 둥근 얼굴은 원만(圓滿)하다. 두터운 통견(通肩)의 법의(法衣)가 가슴에서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형의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선은 그다지 유려하지 못하나 오른손 아래에서 3가닥의 음각선을 이루며 흘러 내리고 있다. 이 불상의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이고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였으며 이중(二重)의 원형두광(圓形頭光)을 지니고 있는데 안에는 연화문(蓮華紋), 이 밖에는 확대된 연주문(蓮珠紋)이 이어져 있다. 전체적인 신체모습은 두꺼운 법의(法衣)로 인하여 그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보주형(寶珠形) 두광을 지니고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쓴 양쪽의 보살상은 각각 손으로 지물(持物)을 감싸 잡거나 합장한 자세이다. 반듯하면서도 단아한 어깨와 중후한 체구 등 신체 각 부분에서 고식(古式)이 나타나는 이 삼존불상은 태안마애삼존불상(泰安磨崖三尊佛像)과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 등 7세기 석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크게 주목되는 삼존불상이라고 하겠다. [문화재청]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