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 본문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다. 명릉이래 만들어진 사각지붕형의 등인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하였다.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며,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문화재청]
종목 : 사적 제196호
명칭 : 영월 장릉 (寧越 莊陵)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소재지 :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시대 : 조선시대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이다.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단의 출사로 촬영허가를 득해서 촬영할 수 있었던곳 일반인은 이곳에 올라와 촬영을 할 수 없는곳이다.
단종의 역사이야기로 볼때 슬픔이 많이 서린곳이라 촬영하는 내내 이곳에는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