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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의 가을단풍 (보물 제1761호) 본문

한국의 문화재/서울권 문화재

향원정의 가을단풍 (보물 제1761호)

카메라대감 2012. 12. 30. 22:46

단풍이 만개한 가을날 바람도 몹시 불고 비가 내렸다. 비에 단풍이 다 떨어진것 같아 비가 오는 와중에 경복궁 향원정에서 가을을 담다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향원지의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이(1017∼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香遠池)와 녹산(鹿山)등 원림 (苑林)공간이 된다. 향원지가 있던 곳에는 본래 세조 2년(1456)에 취로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세조실록」에 보인다. 향원지는 4,605㎡의 넓이의 방형인데, 모서리를 둥글게 조성한 방형의 연지에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잉어 등 물고기가 살고 있다. 향원지의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 밑에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다. 이 향원정에 들어가는 다리인 '취향교'는 본래 목교로서 1873년에 향원정의 북쪽에 건청궁 방향으로 설치되었다.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들어가도록 북쪽에 있었던 다리인데, 6·25전쟁 당시 없어진 것을 1953년에 남쪽에 다리를 놓아서 현재에 이른다. 본래의 취향교는 조선시대 원지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길이 32m,폭 165cm)이다.  현재 향원정의 북쪽으로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인유문(麟遊門)이란 일각문(一角門)이 열렸었고 또 그 남쪽에 봉집문(鳳集門)이 있어 연못은 한층 아늑한 정취(情趣)에 싸여 있었다.  향원정은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지으면서 그 건청궁 앞에 연못을 파서 가운데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정자로, 고종 4년(1867)부터 고종 10년(1873)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라는 다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함화당, 집경당이 위치해 있다. 정자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위층이 똑같은 크기이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으로 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층과 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이층 기둥 위에 짜여지는데,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枓:대접받침)를 놓고 끝이 둥글게 초각(草刻)된 헛첨차를 놓았다. 일출목(一出目)의 행공첨차를 받치고, 다시 소로를 두어 외목도리(外目道里)밑의 장혀를 받친 물익공이다.

일층 평면은 바닥 주위로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고,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사방둘레의 모든 칸에는 완자살창틀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모지붕으로,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어 치장하였다. 향원정은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경복궁 후원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안겨있는 상징적 대표 건물이다. 육각형 초석, 육각형 평면, 육모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섬세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모든 구성요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비례감이 뛰어난 정자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글참조]

 

 

 

 

 

 

 

 

 

 

 

 

 

 

 

 

 

보물 제1761호 향원정의 단풍

2012년 11월

 

김태욱의 문화재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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